4월 초 1박2일 경주답사 타래
오늘은 무슨 뉴스가 있나 하면서 스크롤하다가 3월 31일 월성해자가 일반에 공개된다해서 바로 버스표 끊고 경주로 출발. 근데 하루에 버스가 두개 밖에 없다니...
아무튼 어어엄청 오랜만에 경주에 가봤다. 수학여행 이후로는 처음이니 거의 10여년만.
일단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무작정 월성으로 갔다. 한 10분정도만에 도착.
예전에는 그냥 높은 언덕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정비가 되니까 확실히 "나는 성벽이다ㅏㅏ"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으로는 웅장함이 전해지지않는데 진짜 크고 높다.
커다란 해자. 처음봤을땐 일본성...? 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천천히 보니까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지형에 따라서 계단식으로 되어있는게 이곳의 포인트인듯.
월성 안으로 들어가는 중.
월성 c지구 발굴 현장. 발굴 전에는 조원전을 비롯한 왕궁 중요 시설들이 밀집해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었는데 발굴 결과 그렇게 규모있는 건물들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벼루나 붓같은 유물들이 많이 나온걸로 봐선 왕궁 내 사무시설이 아니었나라고 추측 중.
숨은 다람쥐 찾기
성벽 위에서 보니 무슨 행사를 준비 중이다. 알고보니 복원 개막식이었는데 당일부터 완전 개방은 아니고 당일 임시 개방 후 4월 중순부터 일반인에게 완전 개방이라고.
귀찮아서 하루 늦게 갈까했는데 일찍 가길 매우 잘했다 (칭찬의 쓰다듬)
그나마 실제랑 가장 비슷한 느낌?의 사진. 아무튼 엄청 길고 크다.
월성 바로 옆이 동궁과 월지라 이동 중. 벚꽃이 절정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꾸리꾸리해서 이쁘진 않았다.
동궁과 월지. 예전엔 안압지라 불렀지만 발굴하면서 동궁, 월지라 쓰인 유물 파편이 나오면서 지금은 해당 명칭으로 바꿔부르고있다. 아마 신라 태자의 동궁이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요즘은 임해전을 중심으로한 별궁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데!!! 공사 중이라!!! 가까이를!!!! 못가!!!!!! 뭔 가는데마다 이러냐!!!!! 심지어 야간 개장은 4월 1일부터 재개라 경주까지 갔는데 야경도 못봄...!!!!
그래서 수로나 잔뜩 보구옴. 외부의 물을 끌어오는 입수구로 조선시대까진 커다란 용머리가 물을 뿜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냥 웅덩이만 남아있다.
호안 석축. 통일신라는 우리 역사에서 석조조각이 정점에 이르던 시기였다. 석축만 봐도 이전, 이후 모두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세심한 설계와 배치가 이뤄져있다. 나중에 따로 글이나 만화로 풀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동궁과 월지를 다 보고 경주박물관을 갈지, 황룡사지를 갈지 고민하다가 조금 더 가까운 황룡사지로 선택했다. 근데 비가 옴... 주변엔 편의점도 없음...
한 10여분 걸으면 황룡사 역사 문화관이 보인다. 근데 비와서 날씨 진짜 추웠음...
이거 다 발굴된 기와인가...?
2017년 개관한 황룡사 역사문화관. 빈터로만 남아있는 황룡사 부지를 활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으로 내부에는 황룡사 목탑 모형과 과거 황룡사 모습을 복원한 3d영상 그리고 황룡사 복원을 위한 그동안의 연구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설이라고.
황룡사터 서쪽에 자리잡은 곳인데 원래 지으려던 곳에서 방형 원지가 발견되서 현 워치로 이전 건립했다고한다. 근데 원랜 가건물로 지으려했는데 왜 콘크리트...? (읍읍)
내부를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1/10 스케일의 9층 목탑 복원모형.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제안한 설계대로 만들어졌다.
1층 내부도 자세히 만들어져있는데 잘 안보임 ㅎㅎ... 좀 뜯어주지... (안됨)
모형 양 옆 벽면에는 목탑 구조 횡단면 모형도 있다. 심주로 전체를 지탱하는 일반적인 목탑과 다르게 누각을 층층히 쌓아올린 형태다. 모형이 두개인 이유는 1안과 2안의 기둥 연결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왼쪽은 1안. 일반적인 주심포 양식의 공포다. 가만히 보면 동궁과 월지 건물과 유사한 걸 볼수있다.
오른쪽은 2안. 나무 부재가 아래로 삐쭉 튀어나온 하앙 방식이다. 백제인 아비지가 황룡사 건설에 참여했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백제에서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앙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최종 복원안은 1안이 되었따
1:1 스케일의 목탑 기둥 모형도 있다. 이제 배흘림 기둥이 인상적인.
문화관 1층에는 3d영상 상영관도 있다. 당일 상영한건 화랑이 나와서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한 과정을 살펴보는거였는데 어린친구들이 보기에 딱 좋은 내용들. 난 그냥 쉴라고 앉음...
영상을 다 보고 2층으로 가면 그동안 황룡사 구층탑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와 탑 설계의 변화를 모형으로 볼 수있다.
첫번째는 후지시마 가이지로와 장기인의 복원안. 두개의 큰 심주가 탑을 지탱하고 있다. 1층이 유독 큰건 현존하는 일본탑들의 체감률을 반영한 것.
두번째는 김정수, 박일남의 복원안. 다른 복원설계들에 비해 탑의 체감률이 매우 큰편인데 법주사 팔상전을 참고해서 그렇다고.
다만 팔상전의 경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통일신라 당시의 건물에 투영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고한다.
이 설계도 두개의 칸 심주가 있는게 특징.
세번째는 김동연의 복원안. 이때부터 목탑의 설계가 누각형식으로 바뀐다. 심주에 전체적인 안정성을 보이던 이전과 달리 각 기둥으로 하중을 분산시키는 설계가 특징. 현재 남은 유구들과도 일치한다고.
네번째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복원안. 큰틀에서는 김동연 안과 큰 차이는 없다. 세부적인 결구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하는대 언뜻봐서는 음...그렇군 할 정도. 중앙 기둥을 보면 대각선으로 횡부재들이 하중을 분산시킨다.
황룡사 중금당 추정 치미 복원모형. 국사책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물이다. 웃고있는 조각이 인상적인. 근데 생각보단 크지 않다...?
찰주본기 복원품. 구층목탑을 건립한 이유와 중수된 시기가 기록된 신라시대 당대의 유물로 이 기록 덕분에 지금 우리가 명확히 목탑이 건립된 이유와 그 시기를 알수 있게 되었다. 내용에 따르면 목탑은 645년(선덕왕 14)에 세워졌고 871년(경문왕 11)에 중수되었다. 고려 광종때 다시 세워지지만
그땐 신라가 멸망한 뒤라 기록이 안된걸까. 찰주본기는 원래 목탑의 심초석 내부가 도굴되면서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1966년 도굴꾼들이 불국사를 도굴하다 검거되면서 그 소재가 확인되 다시 찾을 수 있었다고한다. 덕분에 탑의 높이, 연혁들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청동나발 레플리카. 장륙존상의 조각으로 추정된다. 신라에는 신라삼보라는 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각각 해룡의 만파식적,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황룡사의 구층목탑이다. 황룡사는 신라삼보 중 두가지를 가지고 있던 곳이니 얼마나 신성한 공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장륙(丈六)이란 명칭에서 1장 6척, 현재의 미터법으론 5미터 정도로 추정하는데 발굴된 청동나발을 비례로 적용하면 10여미터정도로 커진다고한다.
너무 크지않냐싶지만 금산사의 장륙상이 신라시대 크기 그대로 전해져온다 알려져있는데 이 불상들이 약 10여미터의 높이이니 신빙성 있다 봐야할듯.
장륙상 복원모습도 영상으로 상영해주는데 그 모습은 직접 가서들 봤으면 한다. 얼마나 연구를 했고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으니.
황룡사 중금당 복원안. 황룡사의 중심이 목탑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중심공간은 중금당이다. 창건 당시부터 세워졌고 사실 상 궁궐급의 지위였던 사찰이니 중금당의 중요성은 목탑과 동일, 아니 그 이상이라 봐야한다.
중금당 횡단면도. 본 설계는 2012년 새로 설계된 모습인데 이전 복원도는 차양이 둘러진 2층 건물이었지만 고대건축임을 감안해 그 구조를 단순화해 차양을 두른 단층건물로 바꿨다고.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중국와 일본의 건물들과 비교해 중금당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알려주는 곳. 우리나라엔 당시 건물이 한개도 안남았다는게 참... 여러 생각을 들게하는 코너.
밑에는 당대 유행하던 건축양식에 대해 화면으로 설명해주니 관심있다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런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감상. 굳이 논문을 안찾아봐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전시품들을 다 보면 황룡사 3d 복원도에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퀄리티가 영...
서진 자체는 꽤 빠르고 깔끔하게 찍히는데 구도를 어떻게 좀만 더 자연스럽겐 안되나...
문화관을 다 보고 황룡사 부지를 구경하러 나왔다. 바로 옆이니까 그냥 걸어나오면 되는데 진짜! 무지하게! 추웠음 ㅠㅠ 바람 미친듯이 불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유구고 나발이고 눈에 하나도 안들어옴 ㅠㅠ
너무 추워서 일층에서 대추차 사서 손에 들고 다님
중금당 부지. 가까이서 보면 기단이랑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장륙존상을 세웠을 초석들도. 근데 건물 부지가 이동 트레일보다 낮은 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크다는 인상을 못받았다. 기단정비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중금당 터에서 바라본 목탑 터
목탑 심초석. 크다.
무게만 30t이라고 하는데 1978년 발굴 조사 당시 이걸 들어올릴 방법이 없어서 포항제철에서 크레인을 빌려다가 들어올린건 꽤나 유명한 이야기.
목탑에서 중문가는 길, 답도 유구가 보인다.
황룡사는 신라시대에 세워졌지만 대한민국에도 의의가 큰 곳이다.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이곳을 처음 조사하면서 1탑 1금당 설을 제시했지만 70년대 한국 사학계에서 발굴하면서 1탑 3금당임을 확인하면서 우리 고대사의 독립적인 건축체계를 확인한 곳이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한반도 나름의 건물배치가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이후 정림사를 비롯한 다른 건물터들위 사례도 줄줄이 나온 것은 덤.
아무튼 춥고 배고프고 정신나갈거같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 박물관을 갈것인가 다른 곳을 갈것인가 고민하는데 저 위로 분황사로 향하는 길이 뚫려있어 홀린듯 분황사로.
분황사. 처음와본다...
전성기 신라왕경 사찰들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있는 곳. 그니까 절 터가 아니라 아직도 절이다. 분황사지가 아니라 분황사.
모전석탑과 사자상들. 전탑이 아니라 돌들을 갈아서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전탑을 흉내내서 모전석탑인건 시험 공부 좀 한 사람들이면 다 안다 이말이야. 라떼는 시험 킬링문제 중 하나였는데...(아련)
모전석탑 앞 사자상들. 사자상이 우리나라에 막 전래된 그러니까 초기 사자상들로 추정되는데 궁금하다면 아래 만화를 보시면 됩니다(영업) https://twitter.com/Koogendaz/status/1485794869650296832">https://twitter.com/Koogendaz...
모전석탑은 7층이었다는 말도, 9층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뭐 지금은 3층이다. 짤똥하군. 백제의 석탑과는 다르게 중원에서 유행하던 전탑의 양식을 직수입한걸로 추정한다고. 근데 뒤로 가면 백제 것도 받아들여서 잘 섞는다.
보광전. 1680년 지어진 건물이다. 홀로 지금까지 분황사를 지켜왔다.
아 물론 탑도 함께.
분황사까지 보고 힘들어 죽을거같아서 숙소에 짐풀고 일단 휴식...
타래도 너무 길어질거같아서 밑부터는 간단하게...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놀러오세용...
왕릉은 도로를 찢어...!
왠 학교 앞에 언덕인가 했더니 그 유명한 봉황대 일대. 이게 경주?
봉황대. 조선시대에는 왕릉들을 풍수땜에 만든 조산인줄 알았다는데 나무로 뒤덮인걸 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가는 길에 황남빵. 본인 황남빵 엄청 좋아함... 갓 나온거 먹으면 잘만든 팥죽 한입에 넣는 느낌...
임튼 이거 들고 월정교까지 걸어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해질 때까지 걷기로.
근데 벚꽃 진짜 엄청 많다.... 뻥안치고 길가에 이렇게 벚꽃 많은거 태어나서 처음봄... 날씨만 좋았으면 사람 엄청 많았겠다...(그리고 다음날 피똥쌈)
아무튼 꽃구경하면서 걷다보니 교촌마을 도착. 교촌치킨 시켜먹고싶다...(아니야) 사실 향교 근처 마을이라 교촌마을이라고.
월정교. 엄청 크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와서 일단 후퇴.
근처에 털 다듬는 고앵이
월정교 말고도 교촌마을에는 최부자댁, 경주향교들 볼게 많은데 좀 늦게 도착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다음날 보는 걸로. 해 질때까지 주변을 걷는데 분위기가 꽤나 멋스럽다.
월정교. 춘양교와 함께 760년 왕성인 월성을 남천 아래와 연결시키기 위해 지어진 다리다. 당시에는 월성 밑으로도 여러 관청과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많은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교각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
월정교 자체는 여몽전쟁 이후인 1280년 중수된 기록이 있어 여말선초 무렵까지 500여년 이상 존재했던 걸로 보이나 현대에 와서는 석조 유구만 남아있던걸 75년 실측조사를 시작으로 지난 2018년 복원공사를 통해 다시 세워졌다.
월정교 복원에 대해서는 여러 구설수가 많다. 원형 문제도 그렇고 이층 누각도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강행된 부분은 분명 문제가 크다. 복원보단 재현이 맞겠지. 하지만 건물자체의 완성도는 그간의 연구성과들을 반영하듯 굉장히 뛰어나다. 오른쪽의 2000년대 초반 복원도랑 비교하면 더욱...
길가다 친해진 친구한테 부탁해서 한컷.
실제보면 이정도 느낌. 그냥 다리치곤 많이 크다.
금동장식들도 재현된 모습. 실제 유물보단 다소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다른 복원들과 비교하면 그 의의는 매우 크다. 누각은 올라가볼수도 있는데 월정교의 연혁과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조금 빈약한 느낌이라 전시품을 좀 더 늘렸으면...
월정교 야경. 복원과 보전의 문제는 문화재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된다. 학과 땐 주전공이 도시행정 쪽이었기에 지자체의 입장에선 문화유산이 있다는 건 분명 자산이지만 이를 활용할 방안이 없다는건 큰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다른 산업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을 경우
필연적으로 그 유산을 관광업에 활용할 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게된다. 먼저 다녀온 황룡사지의 경우 그 이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관광지로써의 가치는 이 엉성하게 복원된 월정교보다 높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황룡사터가 가지는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다. 그 밑에 잠들어있을 이야기들은 우리가 함부로 손대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하지만 막상 복원된 월정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조건적인 보전만이 답인가란 의문이 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기에.
아 하지만 엉터리 복원의 가능성은 유네스코맨이 처리했으니 걱정하지말라구~(?)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명활산 지구 5구역은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함부로 건물을 올릴 수 없게 되었으니 세간에 떠도는 졸속복원의 문제는 걱정하지않아도될듯.
월정교를 다 보고 대릉원을 따라 숙소로 걸어갔는데 벚꽃이 진짜... 끝도 없이 있다.
봄마다 벚꽃을 구경하러 경주에 와도 될듯
다음 날.
아아 멋진 하늘이다.
날씨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주 좋다
이렇게 좋을라고 어젯밤 그렇게 축축햇구나
원래 경주에 오면 불국사와 석굴암이 국룰이지만 저녁 약속도 있고 시간도 없어서 이번에는 왕경지역만 도는걸로.
황리단길. 날씨가 좋으니까 대충찍고 필름만 먹여도 꽤나 볼만한 사진들이 나왔다. -단길에 딱히 흥미는 없는데 경주라 그런가 시야를 방해하는 높은 건물이 없이 낮게 주욱 깔린 지붕에 어 이건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겠다 싶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경주의 경쟁력이 될듯.
최부자댁 도착. 신라시대에는 요석궁이 있었다 전해진다.
산수유가 예쁘게 피었다.
최부자댁의 상징과 같은 창고 건물. 만석의 쌀을 가지고있었다 전해지던 부유한 집안답게 무슨 관아 창고보다 크다.
수상하게 잘 다듬어진 경주 향교의 기단돌
월성 일대는 아주 옛날부터 질 좋은 석재들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왜일까...?
수상하게 잘 만들어진 돌계단
이건 근대에 만든건가
경주 향교 대성전.
원래 이 자리에는 신라시대 최고교육기관인 국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 향교로 바뀌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성종 1492년 서울 성균관의 제도를 참고해 고친 것을 임란 이후인 1600년 재건한 것이다.
3칸짜리 건물인데도 꽤나 크다. 옛날엔 좌우에 익랑도 있었으려나.
명륜당 기단. 너무너무너무 수상하게 잘 다듬은 기단들. 혹시 신라 출신 아니신지...?
숱한 의혹만 남긴채 경주박물관을 가기위해 월정교를 간다.
맑은 하늘과 따뜻한 봄날, 이 배경에 찍는 사진은 무적이다.
경주박물관 가는 길. 월성 남쪽은 지금 성벽 조사 중이다. 갈라진 모습은 분명히 사람이 만든 모습.
추정 인용사지. 월성 남쪽에 있었다 전해지는 절인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근처에 맛있는 잔치국수집이 있다곤 하던데 일정이 바빠 다음을 기약...
경주박물관 바로 옆에는 춘양교(일정교)지가 있다. 월정교와 짝으로 지어진 다리인데 신라시대 이 곳에 있었던 남궁의 출입구로 추정된다고 한다. 폭도 월정교보다 조금 크다고.
경주박물관 영남권 수장고.
지난 2019년 지어진 경주박물관 최신 건물. 일반적인 수장고와 다르게 일부 출토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게 개방되어있다. 실제 유물들이 보관되는 수장고 영역도 유리창으로 살짝 보이는데 사진은 생략.
출토된 녹유와들. 이미 신라시대때부터 채색 기와들을 썼다는 증거다. 이렇게 많이 유물이 있는줄은 몰랐...
박물관 본관으로 건너가는중.
이디야...?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이 탑... 무식하게 크다. 석탑이 이리 크나 깜짝 놀랄정도. 감은사탑과 비슷한 시기라니 실물 목탑과 비슷한 크기였을지도.
본관 전시유물들.
그 유명한 신라의 미소
동궁과월지관 유물들.
금동 장식들이 많다.
빠른 탈출...! 을 하고 약속장소로 가는데 무슨 차가 이리 많은지..! 경상북도 사람들 꽃구경하러 다 경주 온줄 알았다...
첨성대와 주변 관청지. 옛날엔 첨성대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주변 건물들 초석들까지 정비되어있다. 큰 건물들은 신라 종묘 또는 조당원으로 추정.
시내에 도착하고 시간이 좀 남아서 경주읍성을 구경하러 가는 중. 기존 석재들을 최대한 활용한 모습이다.
향일문. 읍성 동문이다.
특이하게 성벽 위랑 누각에도 올라가볼 수 있다. 다른 곳도 이러면 안되나... 암튼 이때쯤 너무 힘들어서 여기서 잠깐 쉼.
집경전 터. 향일문에서 5분거리다. 조선 개국 초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고 전해지는 건물의 유구. 특이한 구조다. 도대체 어떤 건물이 있었던건지...
아무튼 이렇게 짧지만 긴 1박 2일간 답사를 끝내고 황리단길 투어를 했다. 동궁과 월지 정비가 끝나는 8월쯤 다시 한번 찾을듯..? 그땐 이번에 못가본 감은사지랑 사천왕사지같은 폐가지 위주로 돌아볼 계획이다.
긴 타래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 행복한 하루 되시길https://abs.twimg.com/emoji/v2/... draggable="false" alt="☺️" title="Lachend gezicht" aria-label="Emoji: Lachend gezicht">https://abs.twimg.com/emoji/v2/... draggable="false" alt="☺️" title="Lachend gezicht" aria-label="Emoji: Lachend gez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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