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대로 망한사랑 주원동식 보고 싶다 그것도 한주원 입장에서야 사랑이지 이동식에겐 처절한 복수인 이 망해버린 관계, 그런데 제겐 어떻게 해도 사랑이라서 다 알면서도 이동식이 자길 좀먹게 두는 한주원

*알파오메가버스
주원의 눈은 참으로 투명해서 동식은 진작에 눈치챘지 이 사내가 날 사랑하는 구나, 애초에 숨길 생각도 않는걸
그러나 동식은 그걸 알아챈 날 주원을 당장에라도 조각내버리고 싶었어 당연하지 그는 원수의 아들인걸 다만 그냥 둔 건 팽팽 돌아가는 이동식의 머릿속 계산이 빨랐기 때문이었지
네가 날 사랑한다니, 넌 정말 좋은 패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밤 지하실에서 동식은 제 영혼이 조각난걸 느끼며 울겠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로, 당신 아버지가 날 망쳤으니 이제 내가 복수할 차례라고, 한기환에게 아들은 끔찍하게 아끼는 트로피니 제가 그 존재를 한번 난도질해보겠다고
제게 죄책감을 갖고 숨어버리려는 주원에게 매달린 것도 동식이야
겉으론 태연하고 따뜻한 얼굴로 당신 아버지랑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를 박박 갈았잖아
아직 내게 버려지려면 한참 멀었는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 질긴 연을 먼저 끊으려 드는 거냐고, 주원을 멸시하는 동식
안 된다고 몸을 물리려는 주원 멱살을 잡아끌고 제 몸 위로 쓰러트려서 허리에 다리를 감은 것도 동식이지. 흥분한 척 눈 밑을 붉히며 이제껏 어떤 알파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으니 책임져달라고, 각인하자고 애원하는 이동식
어쩔 줄을 모르고 그냥 동식이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한주원
울면서 동식한테 다정하게 입맞추지만 그냥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아무렇게나 해달라는 이동식 때문에 가슴 찢어지는 한주원
...아프면 말하십시오, 하는데 아파 죽겠다는 듯이 끙끙대면서 절대 아프단 말 없이 너무 좋다고 자지러지는 동식 때문에 한주원 그냥 눈물도 참아 울 자격도 없는 것 같아서
근데 각인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 눈뜨자마자 무미건조한 얼굴로 사고였다고, 페로몬에 홀려서 누군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자긴 상관 없으니 이대로 살자고 말하는 이동식 때문에 결국 우는 한주원
알만한 사람들끼리 왜 이래요, 하는 이동식 앞에서 겨우 손 부여잡고 예전처럼 고개 묻고 우는 한주원
다 아는데, 이 사람이 자기한테 왜 이렇게 잔인한지 다 아는데 너무 사랑해서, 그에겐 복수겠지만 제겐 이런 온기가 허락된 게 기쁘고 야속하고 동시에 제가 한심해서 그냥 미안하단 말밖에 못해
제 아비까지 죽였는데 이 모멸에 찬 사랑도 못 견딜까? 주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겠지 자길 죽음으로 내몰 걸 알면서도 당장의 갈증에 바닷물을 떠마시는 사람처럼, 어차피 이동식이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부터 표류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각인된 사이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잖아, 주원은 동식이 자신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희미한 혐오와 얼룩처럼 묻은 죄책감 때문에 숨막혀
차라리 이동식이 못되고 나쁘기만 해서 자기를 완전히 부수려는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덜 비참했을지도 몰라
은연중에 동식이 제게 느끼는 죄책감이 더 상처가 되는 한주원... 둘 중 아무도 즐겁지 않은 관계라는 사실이 주원을 미치게 하겠지
각인된 탓에 밖에 나가면 다른 오메가 향에 헛구역질하며 제 오메가를 찾다가, 그에게 느껴지는 저를 향한 불쾌한 감정에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그냥 거둬들이고 말아
그럴 때마다 가슴이 쓰려서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지만 주원은 여전히 동식이 해달라는 대로는 다 해주겠지, 최선을 다해 그를 안고 정성스레 마킹해줘 어쨌든 동식도 각인 때문에 다른 이들의 페로몬에 불쾌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일테니
이동식이 먼저 손뻗기 전까진 맴돌기만 하는 한주원
바싹 말라가는 한주원 보면서 이동식은 처음엔 유쾌했겠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어, 그 기분에 도취되려고 근데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거야 제게 들이밀어진 가혹한 형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이 어린 사내가 매일 다른 이의 체취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하면서도 당연하다는듯 스스로를 내버려두는게
심지어는 이동식 히트사이클때 눈 가리면서 키스해주는 거... 당신 어차피 제정신 아니잖아요, 하면서
혹시 원수의 아들에게 정신 잃고 매달리는 게 수치스러울까봐 각인까지 했으면서 제 얼굴 안 보이게 배려해주는 다정함은 대체 어디 숨어있었는지 이동식 기도 안 차, 네 사랑 참 널 닮아 징그럽다
히트 다 끝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한주원 몸 일으키면서 편히 쉬라고 해서 이동식 복수고 뭐고 진짜 아연해져
너 뭐해...? 하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데 한주원이 망설이다가 고작 자기 이마 한번 쓸어주고는 하는 말이
-...당신이 차라리 그냥 날 미워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덜 아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내가 이기적인 거죠. 미안합니다.

이동식 그냥 입 꾹 다물겠지 순간 한주원 동정한거 사실이니까, 그런 동식 보면서 그냥 미묘하게 웃을듯 말듯 입꼬리 한번 올리더니 나가는 한주원
불안정한 각인이라 주기도 안 맞아서 한 일주일 뒤에야 늦게 러트 왔겠지
정작 자기 러트땐 연락 하나 없는 한주원... 어차피 각인된 사이니 숨어도 소용 없어서 어디 도망치지도 않았을 거야 그말인즉슨 그냥 자기 집에 그렇게 스스로를 가둬서 시들어가고 있단 말이잖아 이동식 자기에게도 느껴지는 불쾌하게 아랫배를 당기는 열락감에 결국 한주원 집 찾아가 문을 두드려
한주원 정신이 흐린 와중에도 달콤한 향에 비척비척 일어나 문을 열면 눈살을 찌푸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서 있잖아
-...한주원, 너...
자기를 보는 눈에 비친 증오에 무의식적으로 따끔한 가슴을 한번 쓸어내린 주원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동식의 얼굴을 감싸고 키스하겠지 심장이 멈출 것 같아
동식이 자기에게도 전달되는 욕망 때문에 찾아왔다고 애써 생각하는 한주원 거칠어지려는 숨을 참으면서 간신히 말하겠지
-이동식씨, 제가 억제제를 먹긴 했는데...
-...누구 맘대로 억제제를 먹어요?
각인 파트너가 있는데 억제제 먹는 형질자? 그냥 자기 몸 축내는 행위인데, 화가 치미는 이동식
-이렇게 불쌍한 척 하는 게 작전인가?
한주원 진심 다 알면서 이동식은 인정하기가 싫어서 모난 소리밖에 못하겠지 빨리 끝내요, 하면서 자기 침대에 옷벗고 누워서 기다리고 있는 이동식 보는데 한주원 이성적일 수 없는 러트 한가운데에서도 순간 이런 스스로가 너무 싫어지잖아
서로 머릿속은 심란한데 몸은 착실하게 흥분하는 와중에 한주원이 끝까지 노팅 안 하려고 빼서 이동식 본능적으로 그냥 안에 해요, 하는데 한주원이 멈칫하더니 이동식 손 끌어당겨서 잡게 하고는 꽉 조이라고 하겠지
제 손 안에서 부푸는 것의 뿌리를 느끼면서 이동식 문득 가슴에 스치는 슬픔에
한주원 보는데 고개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어
-...대체 왜 슬퍼해요?
러트 중에 심지어 노팅까지 하는데 슬퍼하는 알파 듣도 본 적도 없어서 이동식 자기도 모르게 묻는데 한주원 한참 대답 없어
다 끝나고 나서 이동식 손에 남은 제 흔적 닦아주면서도 계속 조용하겠지
-...진심이었습니까?
-뭐가요?
-그대로 했으면, 당신 임신할 수도 있었어요. 우리는 어쨌든 각인했고 나는 러트였습니다.
-......
-...우리 사이에 아이라도 생기면,

깨끗하게 닦인 제 손 계속 만지작대다가 그제야 한주원 고개 드는데 눈물로 잔뜩 젖은 얼굴이야, 이동식 가슴은 여전히 한주원의 슬픔으로 찌르르 울리고
주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진 않았지만 동식은 그가 하려던, 차마 못한 말을 알았겠지 주원은 상상한거야 사랑하지 않다 못해 증오하는 파트너, 그와의 관계라는 명목 하에 태어난 아이? 그 아이를 주원은 너무도 잘 알겠지
바로 자기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당신이 하는 대로 다 내버려두겠지만, 당신이 정말 원한대도...

주원이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한번 저어. 나는...

-난... 나같은 괴물을 또 만들진 않을 겁니다.
-저기... 미안해요.

동식은 이번만큼은 정말 자기가 실수했단 걸 깨닫고 황급히 사과하지만 주원의 상처는 여전히 느껴질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원망 한 번 하지 않는 한주원 조금 진정되고 난 뒤에 넌지시 말하겠지 자기가 평소에 피임약 복용하긴 하는데 오늘은 콘돔 없이 했으니까 사후피임약 복용해줬으면 좋겠다고, 그 뒤에 미안하다는 말 잊지 않고

덕분에 이동식은 주원이 진심으로 이 복수에 동조하고 있단 걸 깨닫겠다
그때부터 동식은 종종 혼자 있을 때 주원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주원의 향기나 손등의 핏줄 같은 것을 떠올리며 가볍게 흥분할 때도 있었지 동식은 각인 이후에 훨씬 건강해졌을거야 어쨌든 주원을 통해 느껴지는 그 큰 사랑의 감정이 동식의 어둠을 점점 몰아냈겠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안정되면서, 그리고 주원의 마킹으로 각인 직후에 다른 알파향이 거슬렸던 것도 서서히 가라앉았어
그러나 주원은 동식에게서 그만큼 긍정적인 감정이나 영향을 받지 못해 여전히 다른 오메가향만 맡으면 속이 메스꺼워
결국 이 각인은 동식이 원하던대로 주원의 세상을 한껏 좁혀놨겠지
한주원에게서 쏟아지는 햇살 같은 사랑에 취해 이동식은 주원이 그동안 얼마나 망가졌는지 잘 몰랐겠지 어느 순간 복수심도 희미해졌을거야 근데 어느날 한주원 근무지 갔다가 한주원이 하얗게 질려서 실종됐던 오메가를 보호자 인계해주고나서야 뒤돌아서 거북한 향에 약 복용하는 것 보고 충격받는다
베타 동료 앞에선 그나마 편하게 풀어져서 희미하게 웃으며 얘기도 나누다가 이동식 보고 놀라면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한주원
분명히 각인된 파트너가 자기 보고서 반가워하는 애틋한 감정 가슴으론 절절하게 느껴지는데,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어린 사내 보면서 처음으로 후회하는 동식
각인하면 좋단 말은 듣기나 했지, 자기는 아프고 힘들기만 하니까 한주원은 이동식 역시 이 각인 때문에 아픈걸까 그게 죄스럽겠지
혹시 아파서 온거냐고, 마킹 필요한 거냐고 묻는 한주원 얼굴이 여전히 하얗게 질려있어
남소장님 장례식에서 차마 제 앞에선 울지도 못하고 고개 숙이던 때처럼
이동식이 냅다 달려들어서 자켓 주머니 이리저리 뒤지는데 죄다 약이야 억제제, 진통제며 다른 형질자 향에 거부반응 줄여주는 약까지... 원하는 대로 착실하고 망가지고 있었던 한주원
이 기이한 관계가 심지어는 한주원이 느낄 수 있는 이동식의 감정까지 둔해지게 만들었단 거 이동식은 모르겠지
이제 한주원은 이동식의 강렬한 감정이 아니면 희미하게 느껴지기만 한거야 근데 주원은 잘 몰랐다가 알고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기를 보면서 느끼던 그 불편한 감정이 옅게 느껴진단거, 이동식을 위해서라면 평생 수용해야 하지만 가끔은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으니
어쨌든 고통은 강렬하니 이동식이 아픈 건 제때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주원...
이동식은 아직 그런 사실까진 모르지만 새삼 한주원 얼굴이 너무 파리해서 충격 받았겠지 얼마나 성실하게 병원 다닌건지 약이 끝도 없이 나오거든 그래서 충동적으로 물어봐
-우리 그냥, 각인 끊을까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이동식은 한주원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이 훅, 끼쳐서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고 심장쪽을 부여잡겠지
순간 놀라서 한주원쪽 보는데 이 어린 남자가 울지도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허망하게 서있잖아
-...왜요? 벌써 만족합니까? 이동식씨, 나 아직, 충분히 안 망가졌습니다.
아니면, 너무 아파서 그래요? 두서없이 묻는데 한주원 오랜만에 들어차는 이동식의 감정을 느끼겠지
아, 이사람 날 불쌍하게 여기는구나... 그리고 주원은 그게 너무 비참할 것 같다 이토록 강렬한 연민이라 자기한테도 느껴질 정도라니 이렇게 매섭게 벼랑 끝에 세워놓고 불쌍해서 손을 놓겠다니
근데 한주원은 이 손을 놓으면 죽음 뿐이라 오히려 간절하게 설득해야 하잖아
복수하겠단 입장에선 그만 두겠다 하고 시달리는 쪽에선 제발 계속해달라고 매달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수평이 맞지 않는 실랑이
사실 건강한 각인 관계였다면 주원도 동식의 저를 향한 애정 한줌을 느꼈을텐데
그 연민을 가장한 사랑은 아직까진 너무나도 희미해서 한주원의 망가진 가슴까진 흘러닿을 수가 없는거야

-그냥 이제 한경위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난 그래도 상관 없다고

한주원은 이동식의 말을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겠지 믿으려 하지도 않겠다 계속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왜요? 라고만 물어
저의를 파악하려고 집중하는 어린 얼굴을 보는데 이동식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겠지 스스로가 싫어져서 견딜 수가 없어
근데 그 자기혐오는 기막히게 눈치챈 한주원은 맥락 없는 감정을 애써 해석하겠지 원수의 아들이란 작자를 기어코 불쌍하게 여기게 된 이동식이 자기혐오에 시달린다고 생각할거야
-...이동식씨가 원한다면, 알겠습니다
결국 한주원이 눈물을 삼키면서 이동식의 손가락만 겨우 감쌌다가 놓겠지. 당신 눈에 닿지 않는 곳에 가서 죽겠다고. 당신 원하는 대로.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그 말은 속으로만 했겠지.
-...아냐. 그냥 말해본 거예요.
-아닙니다. 병원 예약해두겠습니다.
충동적으로 내뱉은거라 물리려는데 한주원은 그 말도 믿지 않고 결국 병원 예약한다 각인은 사실 쉽게 되지 않고 결혼보다 더한 제도에 묶이는 거라 끊어내려면 절차를 밟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 검사랑 상담도 받아야해

그리고 각인결과 검사지 받아들고 한주원 상태에 충격받는 이동식
이정도면 신랄하게 말하면 학대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겠지 이동식도 이제 알게 될거야 자기 감정을 웬만하면 한주원은 느끼지 못한대 근데 차분히 듣는 모습을 보고 쟨 심지어 한참 전에 알았구나, 싶었겠지
의사도 웬만하면 각인 끊지 말라 설득하는 편인데 한주원 형질 불안정한 것 보고 망설이는데
그래도 각인 끊으면 둘 다에게 갑자기 무리 오니까 여기서 더 불안정해지면 한주원 위험해진다고, 최대한 시간을 두고 치료 먼저 하고 끊으라고 돌려서 말하겠지 이대로 바로 끊으면 한주원이 아예 형질자 향을 못 맡을 수도 있고 다음에 다른 상대에게 각인해도 그사람 감정도 못 느낄 수 있다고
근데 한주원 그자리에서 그냥 바로 대답하잖아 그런거 다 상관 없고 아무래도 좋으니까 파트너한테 무리 없다면 빨리 끊어달라고 둘 다 그쪽을 원한다고
이동식만 미치는거지 이 어린애가 평생 반쪽짜리 알파로 살아도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너 진짜 정신 나갔구나 싶은거야
결국 자기한테도 무리 올 수 있다니까 각인 끊는거 싫다고 거짓말하는 이동식... 누가 들으면 그 치졸하기 짝이 없는 말에도 한주원은 그냥 묵묵히 고개 끄덕이겠지 그럼 나중에 하자고, 이동식씨가 아플 수도 있으니까

이동식은 제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한주원이 말을 듣는 게 너무 서글플 것 같다
아무래도 근무 특성상 형질자 만날 일 많으니 한달 휴직하고 이제까지 먹는 약 다 끊고 안정제만 복용하라는 얘기 듣는 한주원 당연함 그만큼 망가져있었으니
집가는 길에 동식이 운전하면서 오른손으론 주원이 손 끌어다 만지작대겠지 느껴지는 사내의 기쁨과 더불어 섞인 불안함 애써 모른척하며
어느새 굳은살 박인 손 쓰다듬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남자에게 안정감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동식 그냥 떠보듯이 내친김에 결혼도 할까요? 물어봐 각인이랑 결혼은 다른 의미라 어쨌든 결혼까지 하면 사회적으로 좀 더 인정받고 공고해지는 관계가 되겠지 그렇게 묶이면 한주원이 안심할까 싶어서
근데 바로 한주원이 거부감 들어하는게 느껴지잖아 동식 좀 당황하는데 주원 겉으로는 태연하게 ...그게 이동식씨가 원하는 겁니까? 이런거나 묻고 있어 사실 누구보다 결혼에 트라우마 있는거 한주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 없이 명분만 있어서 한 결혼 자기 부모가 그랬으니까
사실 각인도 쉬운게 아닌데 한번에 성공한거 한주원이 그만큼 이동식 사랑해서 가능했겠지, 각인도 한주원에겐 겁났을텐데 그냥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달라니까 해줘버린 어린 남자... 이동식 너무 미안해지겠지 가슴 속에서 가시지 않는 거부감을 다 아는데 여전히 손은 놓지 않는 이 어리석은 놈
워낙 상황이 그러니 이동식 고집 부려서 한 달 동안 둘이 같이 살게 되는데 한주원은 그냥 이동식이 자기를 또 한 명의 챙겨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했구나 싶었겠지 그리고 오해했을 것 같다 한 달이 일종의 유예기간 같은 거라고... 그래서 그동안 자기가 뭘 더 잘못하진 않을지 내심 겁먹을거야
동식이 모를 리 없어 이 각인은 동식에겐 너무 기민한 감각을 일깨워서 주원이 느끼는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졌거든 이동식만 미치겠는거지 순도 백퍼센트의 애정만 느껴지던 것이 스물스물 겁과 불안으로 덮여서 전달되니까
한편 한주원 너무 약을 과다복용해서 페로몬 제어가 제멋대로인 상태인데
몰래 열 오를때마다 마음대로 먹던 해열제도 들킨 날에는 이동식도 화내겠지 대체 뭐가 문제냐고, 의사한테서 열날 수도 있는데 약으로 조절할 생각 말라고 같이 들어놓고 왜 이러냐고 화내는데 한주원 그냥 미안하다고 하겠지 그 말에 비아냥대는 이동식
-한주원씨는 미안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나?
-그럼 제가 뭐라 해야 할까요.
-...뭐?
-알려주면, 그렇게 할게요.
-......
한주원 눈이 지쳐있어. 이동식을 위해서 나아야할지 더 아파야할지 자기도 모르겠거든. 이 한달 뒤에 자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 애초에 이동식에게 모든 처분을 맡겼잖아.
그런 한주원 보면서 아, 얘 진짜... 망가졌구나 깨닫는 이동식
근데 자기 버릴까봐 허겁지겁 자기 아직 안 망가졌다고 하던 애 얼굴이 떠오르는거야
여기서 얘한테 너 내가 결국 망쳤다고 하면 이게 끝인 줄 알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을 것 같아서 애써 그 말만은 참는 동식이겠지
그래서 누가 봐도 망가졌고 본인도 그걸 아는 사람한테 너 아직 내가 만족할 만큼 안 망가졌다고 우기면서 한주원 끌어안는 이동식... 제 감정도 무디게 느껴지니 혹시 향도 안 맡아지는건 아닌지, 이러다 각인이 끊기는 건 아닐지 매일 자기 쇄골께에 한주원 얼굴 갖다대고 향 나냐고 물어보는 이동식
근데 둘 다 사실 일상을 같이 보낸 적은 없어서 치료라고 우기면서 껴안고 진한 키스는 해도 같은 집에서 따로 생활하는거야 한주원 그냥 자기 일상대로 혼자 운동 갔다와서 하루종일 책 읽고 그래
동식이가 그래서 병원 검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라도 좀 쐬고 가자고 그러겠지
날도 좋고 별 얘기 없이 커피 한잔씩 사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데 오랜만에 주원이 얼굴도 좋아보여서 갑자기 자기도 의식 못한 새에 애정이 피어오르는 이동식... 그냥 저 어린애가 더이상 근심 없는 얼굴로 자기 옆에 앉아서 가만가만 볕 쬐는게 예뻐서
동식의 애정과 만족감은 주원에게도 느껴져
동식의 감정이 주원에게 느껴진건 아주 오랜만이겠지, 근데 그때부터 한주원 낯빛이 안좋아지더니 안절부절 못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거야 갑자기 불안으로 요동치는 감정에 놀라서 이동식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는데 문득 깨달을 것 같다
아, 얘... 이제까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나한테 퍼줬구나
지금껏 강박적으로 약을 통해 형질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온 터라 뭐라도 튀면 너무 불안한거야
이동식의 행복한 감정이 전달되는게 꼭 자기 가슴이 붕 뜨는 것 같아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한주원 얼굴 보면서 이동식 그거 행복이야, 주원아 하면서 끝내 울 것 같다
이 사내는 왜요?라고 되물을뿐
그뒤부터 이동식 한주원한테 꼬박꼬박 자기 감정 말로 설명하려고 노력하겠지 평생 그렇게 해본적 없어서 한참 서툴지만 주원이 손 잡으면서 너무 기분 좋다고, 날씨가 좋은데 한경위랑 있어서 더 좋다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 고백에 주원이가 기분 좋아하는 것도 느껴져서 더 행복한 이동식
주원이는 잘 느끼지 못하니까 동식이는 자기 상태 말해서라도 알려주고 싶었어 너무 늦은 거 알지만 한주원에게 네가 내 곁에 있는 게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이라도 이 어린 남자가 알았으면 싶어서

비오는 밤 주원이 들어오지 않는 집에 홀로 앉아 동식은 다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이미 너무 늦었나봐, 이 비에 제가 새삼스럽게 더 증오라도 할까 기꺼이 자리를 비워준걸까 동식은 웃는다
주원은 그냥 익숙해진거야 언젠가 땅으로 고꾸라질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결론짓는게, 동식이 요 며칠새 달콤한 말을 해도 그냥 단념했겠지 근데 동식은 그런 애를 비난할 수가 없잖아
지난 세월동안 자기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말뿐인 것은 허울이라 부정하고 누군가 일으켜주려해도 주저앉으면서.
차라리 제 앞에서 숨으려던 사내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졸렬한 마음으로 이 사람의 사랑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후회도 소용없지, 그저 그애가 비맞고 있지만 않길 바랄뿐
눈 밑 그늘을 짙게 드리운채 다음날 아침에 나타난 한주원, 그 어린애 얼굴 보면서 이동식 큰 결심 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에게 이것조차 상처로 남을 거 너무 잘 알지만 어차피 제 손에 달렸다면 그냥 자기가 진심 갖고 논 죄 받는다 생각하기로 하면서
-...헤어집시다.
이제는 널 제자리에 두겠다고
동식이가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주원이 감정도 잔잔하겠다 워낙 상상해온 터라 이제는 충격도 크지 않아 그냥 이 사람이 오래 참았구나, 싶었어

-...그럴게요

끝까지 순순하고 다정하게 대답하는 한주원, 근데 둘 다 각인에 대한 얘기는 안 해서 결국 각인 끊기지 않은 상태에서 애매하게 헤어진 둘
이동식 알았겠지 지금 각인 끊으면 한주원 몸에 무리 간다는 핑계로 애써 모른척했지만 실은 그냥, 그것만큼은 끊고 싶지 않았던거야 한주원이 자기한테 어떤 마음으로 각인했는지 알았고 자기는 이제 그 마음 혼자 품고 가야하니 두고 싶었어
그렇게 각인은 했지만 헤어진 이상한 관계로 일년이 흐름
"이동식씨. 밥 잘 챙겨드세요."
동식은 그렇게 말하는 해쓱한 얼굴의 주원을 바라보다가 말해, 이 말이 무심하게 전달되길 바라면서
"자고 가요. 어차피 곧 러트잖아."
주원은 차키를 챙겨들다가 멈칫하겠지. ...알고 있었어요? 본딩이야 아직 안끊겼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동식이 내뱉겠지.
주원이 어딘가 슬프고 착잡한 낯으로 그런 동식을 보다가 말해. 미안합니다 이동식씨. 끊는게... 쉽지가 않네요. 동식은 그 말에 찌르르 울리는 가슴을 숨기지. 난 뭐, 상관 없어서. 아무튼 자고 갈 거죠?
모든게 끝나도 본딩이 남아있단 이유만으로 육체적 교류만은 끊기지 않은 사이. 동식은 자조해.
"...그럴게요."
몸은 벌써 뜨겁고 눈빛은 거친 주제에 주원은 순순히 대답하지. 동식은 알아, 만약에 제가 한마디라도 하면 주원은 금방 몸을 물릴 거야. 그래서 이동식은 더 뭐라 말할 수 없이 간절히 이 남자를 붙잡겠지. 모든 명분이 없어져도 본딩이 끊기지 않아 지지부진한 사이였으니
부딪치는 단단한 몸을 느끼며 동식은 생각하겠지, 이건 오래된 생각이야, 제가 이럴 자격이 있는 건지. 여전히 빛나는 이 어린 남자의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에 가끔은 죄책감으로 가슴이 다 울렸어. 그래도 가장 빛나는 죄는, 이렇게 여린 가슴을 난도질하고도 제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You can follow @sweetandcrispy.
Tip: mention @twtextapp on a Twitter thread with the keyword “unroll” to get a link to it.

Latest Threads Unrol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