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그런 것도 보고싶은데.. 10년만에 25층 호텔 스카이라운지 가는 엘베에서 마주치는 현수은혁. 거기 프로포즈 명소로 유명한데, 각자 연인이랑 같이 온 거지. 25층까지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앞만 보는 척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서로의 얼굴 훔쳐보며 과거를 더듬는 두 사람.
그린홈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차현수 이은혁이 발견한 걸 시작으로, 눈 맞고 배 맞추고 연인이 된 두 사람. 상처를 핥아주는 짐승들처럼 낡은 매트리스 위에서 끌어안고 뒹구는 게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을 거야. 현수는 방 밖이 두려웠고, 은혁은 그런 현수에게 상처를 마주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
밤새 게임하고, 해가 떠있는 내내 자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은혁이 돌아오면 함께 밥먹고 붙어 먹는 일상. 현수에겐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은혁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어. 늘 어두운 현수의 방, 퍼런 빛이 뿜어져나오는 모니터, 1년 넘게 그 모습 그대로인 현수.
어느날은 조심스레 물었을 거야. 현수야, 너.. 검정고시 준비해 볼 생각 없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왜요? 난 지금이 좋은데. 입술만 한참 달싹이다 은혁이 그러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근데 그게 현수의 버튼을 눌렀음. 이렇게 사는 게 뭔데요? 형도 나 무시해요? 늘 유순하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던졌어. 은혁은 그런 현수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지.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난, 너..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그말에 현수가 코웃음 쳤어.
우리 엄마아빠도 그랬어요. 다 내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불쑥 끄집어내진 현수의 상처에 은혁은 입을 다물었어. 너 많이 흥분했다, 쉬어. 그저 가방을 챙겨 일어섰지. 혼자 남겨진 현수는 쾅 닫힌 현관문만 바라봤어. 팔에 상처가 욱씬거리는 것 같았음.
그날 이후 둘 사이 좀 어색해졌겠다. 은혁은 연인이라면 인생의 힘든 일을 같이 헤쳐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현수가 보인 반응에 좀 현타가 왔을 테고.. 현수는 현수대로 형 눈에 내가 한심해 보이나봐 시무룩해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데 속으론 둘 다 눈치보고 있는 거.
둘 다 무섭기도 하고 얘기 꺼낼 타이밍도 놓쳐서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렀지. 그 사이 은혁이 병원 인턴으로 일하게 됐고, 두 사람 함께 하는 시간도 줄어들었어. 피곤에 찌들어 이불 안으로 풀썩 쓰러지는 은혁이 끌어안으며 현수도 생각이 많아짐. 형은 이제 곧 의사가 되겠지?
그래도 날 계속 만나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다고 말하던 은혁의 표정이 떠올랐어. 아니, 형은 날 버릴 거야. 내가 한심하니까. 방 밖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는 히키코모리 새끼니까. 은혁이 바깥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현수는 방안에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어.
불안감은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됐지. 현수야, 낮에 너무 잠만 자지 말고 일어나서 창문도 좀 열어놓고 그래. 햇볕을 받아야 돼 사람은. 걱정하는 말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제 앞에서 책 펴고 공부하는 게 잘난 척하는 걸로 보였어. 의사 하면 얼마 벌어요? 이런 집에선 안 살겠지?
은혁은 어느 순간부터 제게 자격지심 비슷한 걸 드러내는 현수가 불편했어. 기분 나쁜 말을 툭 던졌다가 아 장난이에요 거둬들이는 걸 볼 때마다, 얠 어떻게 해야하지 감이 안 잡혔음. 둘의 관계는 한쪽이 불을 붙이면 금방이라도 까맣게 타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했음.
그러다 사건이 터지지. 그날 은혁이 참관한 수술 잘 안 풀려서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거든. 다음날 또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니깐 집 가자마자 씻는데, 은혁이 핸드폰에 진동이 오는 거야. 이런 늦은 시간에 누군가 싶어 폰 들어본 현수. '음료수 잘 마실게. 너도 오늘 고생했어. 푹 쉬고 내일 보자.'
발신자엔 정의명 선생님(GS)라고 쓰여있었음. 은혁이 다른 남자에게 음료수를 준 것도, 그 남자가 늦은 시간에 답장을 보낸 것도, 그게 같은 의사인 것도.. 그 남자 이름에 붙은 GS가 뭔지 알아먹지 못하는 자기 자신도 모조리 다 싫었어. 격한 들숨과 날숨으로 현수의 가슴팍이 오르내렸음.
그때 샤워를 마친 은혁이 머리를 털며 나왔지. 젖은 머리와 말간 얼굴이 더 사람 속을 뒤집어놨어. 큰 보폭으로 은혁에게 다가선 현수가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끌어 매트리스 위에 내동댕이쳤어. 너 왜 이래! 소리치는 은혁의 얼굴을 쳐박게 하고 헐렁한 잠옷 바지를 잡아내렸음.
제것을 대충 흔들어 세운 뒤, 풀어주지도 않은 구멍에 밀어넣었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은혁의 허리가 계속 무너지는데도, 골반을 제쪽으로 끌어당길 뿐이었지. 고간과 엉덩이가 거칠게 맞붙고, 은혁은 이불에 얼굴이 비벼진 채 윽, 윽.. 먹어들어가는 신음밖에 내지 못했음.
강하게 조여오는 내벽에 빠르게 사정감이 올라와. 허릿짓을 하며 은혁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돌렸어. 눈물 젖은 얼굴을 부여잡고 난폭하게 혀를 섞었지. 숨이 딸려 헉헉대던 은혁이 울먹였어. 혀, 현수야. 왜, 읏. 그래.. 흡, 나 무서, 무서워.. 그 얼굴이 지독하게 야해서 욕이 튀어나왔음. 씨발.
욕지거리에 놀란 은혁이 바르작거렸음. 어딜 도망가려고. 은혁의 목덜미를 잡아 다시 매트리스로 쳐박았어. 왜 밖에서 헤프게 굴어요. 형 걸레예요? 아니, 야.. 아냐.. 형은 날 너무 좆같이 만들어요. 형 앞에만 서면 내가 너무 좆같아진다고. 뭉개진 발음으로 뭔가를 말하려 애쓰던 소리가 뚝 멈췄어.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 밤이었어. 형은 날 너무 좆같이 만들어요. 그 새벽 이은혁은 퉁퉁 부은 눈으로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은 뒤 영영 사라져버렸지. 아이러니하게도 은혁이 사라지면서 차현수는 정신을 차렸음. 제가 망가뜨려버린 관계를 몇 번이고 복기하고 후회하면서.
띵- 25층에 도착했다는 안내음이 울리고, 각자 연인의 손에 이끌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 안내받은 자리로 걸어가며 스치듯 눈이 마주쳐.
만약 네 옆에 아직 내가 있었다면.
만약 네 옆에 아직 내가 있었다면.
+ 두 사람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것도 보고싶네. 복잡미묘한 마음으로 화장실 들어선 현수, 손씻고 있는 이은혁 발견하고 멈칫함. 은혁도 잠시 굳었다가 모르는 사람인 척 제 할 일을 계속하는데, 이은혁 손에 끼워진 반지에서 손 못 떼는 차현수.
손 아니고 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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